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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며, 다른 학생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내가 나를 표현하는 게 왜 듣고 싶을까 모르겠네. 왜. 무당이 제 굿 못한다잖아. 갖은 심리학자들이 자신을 분석하려고 끝없이 노력했었고... (웃음소리.) 잘 듣고 있어? 어려운 소린 그만 하지. 하여간, 그래. 자신에 대해 표현하는 걸 꺼리는 사람보다 남에 대해 떠들어대고 싶어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나머진 알아서 들었으면 좋겠는데.

 

“명인 선생님 말이죠? 워커홀릭이에요. 그 사람, 보건관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같이 일하긴 썩 나쁘진 않습니다. 친하지 않아도 당직 대신 부탁하면 잘 맡아주고요. 내가 잘못했을 때는 쪼오~끔 무섭긴 한데… (그렇지. 명인 씨 말로 때리는 사람이잖아. 원래는 정신과 쪽이었다던데.) 아 그랬어? 그건 몰랐네. 근데 정신과 쪽이면 좀… 친절하게 말 들어주는 쪽이지 않나? (그건 상담심리고, 전공은 임상심리 쪽이실 걸.) 뭐, 일 이야기 말고 자기 이야긴 잘 안 하는 사람이잖아. 쨌든 그렇습니다. 무섭고 자기 할 일 잘하는 사람. 똑부러지고. 할 말 잘 안 가리고. (할 말 잘 가리지 않아?) ..학생들한테만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맞네. 맞아. 어른이라고 안 봐주시는 건가.)

 

“보건쌤이요? 아, 명인쌤 말하는 거구나. 그 쌤 가끔 화장실에서 담배 피워요! 수위 아저씨랑 실랑이 하는 거 봤어요. 성격이요? 수업 안 들어봐서 모르겠는데, 그 선생님 수업은 메인으로 갈 거 아니면 다 피하던데요? 과제도 산더미같이 내주고, 좀 무섭대요. 복도나 보건실에서 마주칠 때도요. 차갑다고 해야 하나. 가라앉아 있는 느낌? 사색적인 분위기?”

“근데 말이죠, 저번에. 수위 아저씨랑 같이 있는 모습을 들키니까 나보고,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댄다.) 쉿. 이랬어요. 그리고... (말해야 하나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지 끙 앓는 소리,)

“...무슨 사람 홀리는 것 같이 웃던데. 그렇게 안 좋은 성격은 아닐지도요.”

 

“곽명인이요? 좋은 사람입니다. 좀 배배꼬인 성격이지만요. 음. 배배꼬인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안 그렇게 들리겠지만. 가끔씩 히스테릭해지는 것만 빼면요. 그보다 더 정확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정신과의 외과의 같다고나 할까요.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걸 압니다. 그만큼 타인의 감정을 잘 가늠해서 필요한 걸 처방해주죠. 좋은 상담의, 단단한 인간. 왜 이렇게 잘 아냐고요? 전 약혼자라서요. 하하. 정확하다고 했잖아요. 직장에 전 약혼자가 있는데 티도 나지 않아요.”

“직장을 옮겨야 한다고 들었을 때 제가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학생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서요. 학생들을 인턴이나 레지던트 대하듯 하던데요. 애정이 많을수록 틈을 숨기겠다고 견고한 태도를 취하는 버릇이 있죠. 전 상담의의 분석입니다.”

[ 보건 ] 동아리 활동은 어떠셨는지요.

즐거우셨나요. 의미 깊었나요.

무기력하셨나요, 흥미가 생기지 않으셨나요.

 

엉망진창이었지. 애들은 좋은 학교 학생들이니, 배우는 속도는 빠른데.. 하는 짓들이 다 하룻강아지 같지... 같이 하는 선생님은 다 좋다고만 하면서 제대로 된 피드백은 피하고. 그래서 내가 안 좋은 역할은 다 했어. 동아리 시간에 모든 지식과 경험을 머릿속에 쑤셔넣어주려는 역할. 좋게 기억해줄 지는 의문이네.

 

 


 

귀인,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혹시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나요? 

골초야. 학생들한텐 보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게 잘 됐으려나... 싶은데. 어머니 핸드백에서 한두 개비 훔치던 게 습관이 됐지. 라이터는 항상 가지고 다니고 있어.

 

원하는 학생이 있으면 개인 상담도 해. 선생은 웬만해선 받지 않아. 내 일이 아니니까. 전화나 구두로 미리 약속을 잡을 것. 상담은 문을 열고, 상담실에서. 수요일 저녁은 약혼자랑 약속했던 요일이라 습관적으로 비우거든? 급하면 수요일 저녁으로 부탁해.

 

모종의 이유로 개인 상담의를 때려치우고 여기에 왔지. 누굴 가르치는 건 그다지 적성에 안 맞지만. 나쁘진 않은 직장이야.

 

좋아하는 건 내 일. 싫어하는 건, 좋아하는 걸 방해하는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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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식 처리반 ] 

1학년 건물 쪽에 근무하러 가는 요일이 있거든. 필요한 게 있다고 종종 찾아왔어. 상비용품과 약품을 털어주면서 얼굴이 익숙해졌지. 말도 좀 트고. 식도락 동아리란 걸 알게 된 다음에는 손대기 싫은 간식을 넘기고 있어. 간식을 주기 시작한 후로 묘하게 더 자주 오는 것 같은데 말야, 물론 내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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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과 예외

그게, 수능을 200일 앞둔 어느 날이었었나. 초시계를 맞춰 두고 문제를 풀다가 창문 너머로 눈을 돌려서 비행기를 봤던 게 기억나. 왜 그게 유난히 생생할까.

널 우연히 만난 다음에는 비행기 대신 너를 보러 갔지. 대화하고. 가끔 점심을 같이 먹었지. 널 보는 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랬으니까.. 그 때. 자습시간에 네가 짐을 안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걸 보고 뒤따라 나왔었겠지. 수능 잘 보라는 말 대신 잘 지내라는 말을 해줬던 걸 기억해. 그래서 다시 만난 게 더 반가웠고. 

이번엔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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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내담자 ]

하고 싶은 말이 없으면 책을 가져오라고 했어. 나는 서류정리를 하다가 불규칙적으로 말을 걸어주고. 린은 대답하고. 눈을 마주치고 짧게 대화하다가 각자 일을 하는 걸 반복하는 식이었어. 그렇게 상담시간을 채웠고. 아주 가끔은, 린이 자기 이야기를 했지. 

감정적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어.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하니까. 하지만 린은 수많은 내담자와 같진 않아. 내가 꾸준히 오랫동안 봐주었으니까. 나에겐 학생이라기보단 특별한 내담자나 마찬가지야.. 유독 신경이 쓰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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