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인,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며, 다른 학생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 기면증 / 강직함 / 과묵함 / 내향적 §
······알았어.
그 아이요? 말수가 적죠. 얌전하다고 해야할지, 사람 대하는 게 좀 서툴어보인다고도 할지. 딱 자기 할 말만 하는 스타일 있죠? 그래서 솔직해보인다는 사람도 있고, 그게 별로라는 사람도 있고 그렇죠. 아무튼 오지랖 한번 말로 듣기 참 힘든 친구라니까요. 아, 말로 하지 않는다 뿐이지 행동은 그래도 많이 다정한 아이에요. 자주 볼 수 있었던 모습이라, 그건 역시 창가에서 졸고 있는 거겠죠?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보면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니까요. 학교는 자러 오는걸까? 하하. 생긴 건 얼음 공주같아서 하는 짓은 완전 맹한 게 걔 매력이에요.
이건 여기서만 말하는건데, 전 걔가 학교 부지에서 길고양이랑 놀고 있는 것도 봤어요. 사람 앞에선 그렇게 무뚝뚝한 얼굴이더니 고양이 앞에서 맥을 못 추던데요. 완전 의외! 걔가 그렇게 웃는 건 그 때 처음 봤어요. 내가 걔를 기억하는 이유요? 으음, 사실 걔는, 학급 친구들에게 은근히 다정한 면이 있거든요. 아까도 말했지만... 도움이 급해보이는 애가 보이면 다가와서 도와줬다가 금방 떠나가고 그래요. 나한텐 담요를 빌려줬었어요. 그래서 나도 그렇고, 반 애들도 다 걔 싫어하진 않아요. 그냥 먼저 말을 잘 안해서 그렇지.
자다 깨서 멍한 표정 지을 때가 귀엽죠. 행동이 느릿느릿해서 체육복 갈아입을 때도 걔가 반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나와요. 도서부 소속이라 반에 없으면 도서관에 있을 확률이 백 프로에요. 가끔 책에 손을 베여서 양호실에 가기도 하던데. 왜 그렇게 잘 아냐구요? 내가 걔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 같아요? 절대 아니거든요! 이, 이제 기록 그만해요. 그만!
[ 도서 ] 동아리 활동은 어떠셨는지요.
즐거우셨나요. 의미 깊었나요.
무기력하셨나요, 흥미가 생기지 않으셨나요.
자도, 된다고 들어서···. ······책도 좋아해. 최근에 다 읽었던 건 이거야. (표지를 슬쩍 들어 책 제목인 '살육에 이르는 병' 을 보여준다.) 책장 높은 데까지 손이 닿으니까··· 책 정리는 주로 내가 했어. 나, 자주 졸리니까 많이 기억나진 않지만 다들 친절하고, 좋았어···.
귀인,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혹시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나요?
······말할 만한 게 있으려나. 키가 커서 자주 어른으로 오해 받아···.
머리는··· 혹시 염색한 거냐고 많이들 물어보더라구. (부끄러운지 머리카락 끝을 짐짓 매만졌다.) 이거, 다 새치야···. 우리 엄마도 머리가 일찍 희었다고 하셨고. 그래도 안 쪽엔··· 아직 검은 머리가 남아있어. 이거 볼래. (한 줌 쥐어 쓸어내리자 은빛 머릿결 사이로 흑단빛이 얼핏 스쳤다.)
좋아하는 책은, 베고 잘 수 있는 두꺼운 거.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었다.) ···농담이야. 도서관을 정말 좋아해서, 점심도 거르고 도서관에서 잠을 잤었어. 그 포근한 분위기가 좋아. 도서부에 들기 정말 잘한 것 같아···. 거기서 친구도 조금 사귀었는데, 나를 하니라고 불러줘.
나, 슬슬 졸려. 미안···. ···아, 안녕······. (스르르 잠에 드는지 두 눈꺼풀이 나릿하게 아래로 감겼다.)

[ 초등학교 동창 관계 ]
"나와 은하는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어. 가끔, 날 놀리는 아이들에게서 지켜주고... 은하는 그때보다 조금 더 조용해졌지만, 상냥한 건 그대로야. ...수업 시간에 깨워주기도 하고, 체육하다가 잠들어버렸을 때는 은하 덕분에 교실로 돌아올 수 있었어."

[ 너무 규칙적이라 곤란한 룸메이트 ]
"...유정이는 내 룸메이트야. 작년에도 올해도 같은 방을 쓰고 있어. 활기차고, 좋은 사람... (깜빡이던 눈가를 손등으로 문지른다.) 미안, 오늘도 유정이가 새벽에 날 깨우고 가서... 잠을 오래 못 잤거든. 그래서 너무 졸려... 기록, 그만... (말을 다 끝마치지도 못하고 다시 잠에 든다.)"

[ 도서부 후배 ]
"(차분한 어조로 말을 가다듬었다.) 서연이와는... 도서부에서 만난 사이야. 책 정리를 할 때 그 아이가 아래를 도맡아주고, 내가 위 쪽을 정리하곤 해. 최근에는 같이 토론회를 준비했었어. 그래도 난, 계속 졸아서... 별로 도움이 안됐을거야. 그리고... (잠시 말미를 두었다.) ...귀여워. ...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 사탕을 주는 좋은 언니 ]
"하늘 선배를 처음 만났던 건... (조금 부끄러운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졸려서 잠들어버렸던 나를 벤치로 옮겨주셨을 때 눈이 마주쳤어. 레몬 사탕을 주셔서... 정말 고마웠어. 그 뒤로는, 가끔 영웅이를 보러 갔었던 검도장 근처에서도 하늘 선배를 만났었어. 먼저 한아, 하고 불러주시는 활기찬 선배님이라고... 생각해."

[ 도서부 선배 ]
"(친한 사람에 대한 화제가 나오자 흑요석빛 눈동자가 잠시 반짝였다.) 린 선배는, 내 상처도 자기 것처럼 걱정해 줘... 이것 봐. (쭉 뻗은 하얀 손가락에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다 린 선배가 붙여준거야. ...정말 상냥한 사람. 참, 린 선배는 글도 잘 써. 종종 선배의 글을 읽었거든. ...응, 나는 선배의 문체도 좋아해."

[ 소꿉친구 ]
"...어렸을 때, 영웅이네 부모님께서 나한테 특별히 부탁하셨어. 다친 곳이 있는지, 잘 살펴봐달라고... 그래서 지금도 가끔, 영웅이와 같이 양호실에 가. 10년은 넘게 친구였으니까, 영웅이에 대한 건 대부분 알아. 문어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도... 최근에 있었던 일? (짧은 숨 뒤에 말이 차분하게 이어졌다.) ...사실, 수업시간에 영웅이랑 나란히 낮잠자다가 선생님께 혼났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