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인,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며, 다른 학생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별로 떠드는 걸 즐기진 않아서 말이 짧은 편인데, 그래서 좀 싸가지 없다고들 하더라. 뭐, 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해. 표현이 적으면 그만큼 오해받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도 나름대로 기본적인 예의는 차리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연장자한테 막나가는 것도 아니고, 밑으로도 함부로는 안 한다고. 애초에 한 마디면 충분할 말을 굳이 세 마디씩 할 필요는 없지. 아무튼… 대충 그래. 지금도 같은 부분에서 더 설명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또? 아, 귀찮아. 성가시게 하네.
화는 잘 안 내.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도 바로 하고. 말싸움, 몸싸움… 아무튼 그런 거 딱 질색이거든. 듣기만 해도 피곤해진다. 그냥 좀 져주면 피차 원만하게 지나갈 수 있는 문제가 세상엔 참 많은데. 그걸 꼭 이기려 드는 건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부류야. 그렇다고 지는 게 좋다는 건 아니고, 차선책을 선택하는 셈이지. 호구같아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겠어.
( 동급생 A군의 증언,
걔? 호구 맞아. 자기는 끝까지 아니라는데. 부탁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고, 손해 봐도 따지기 귀찮다면서 넘어가고. 그럼 그게 호구지 뭐가 호구야? 웃긴 건 또 그러면서 자기가 뭐 받으면 안 돌려주고는 못 버텨. 원수는 안 갚아도 은혜는 갚는 타입이지. 또 책임감 하나는 장난 아니라서 맡은 걸 제대로 못 해내면 스트레스 받고, 자기가 실수한 건 꼭 자기가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나. 아무튼 잠깐 보면 까칠한데 알고 보면 완전 물렁하다니까. 성질이 좀 있긴 하지만 나쁜 애는 아닐 걸, 아마. )
지금까지 봐서 알겠지만 웃거나 화내거나… 그런 게 별로 없어서 그런가. 속을 모르겠다는 말 종종 들은 적 있는데 이건 억울하네. 이래봬도 거짓말 같은 거 안 해. 좋아하지도 않고. 어차피 언젠간 들키게 되어있어. 그럼 해명해야하고, 귀찮잖아. 비슷한 이유로 법이나 규칙도 꼬박꼬박 지키는 편이야. 안 지키는 쪽이 나중에 귀찮아질 확률이 높아. 남이 어기는 건 알 바 아니고.
[ 밴드 ] 동아리 활동은 어떠셨는지요.
즐거우셨나요. 의미 깊었나요.
무기력하셨나요, 흥미가 생기지 않으셨나요.
의무라고 하길래. 마침 베이스도 좀 할 줄 알고. 손이 녹슬게 두고 싶지도 않아서. 그 낮게 울리는 비트는 지금도 좋아하기도 하고. 인기가 많은지는 모르겠는데. 관심 없어. 이제는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귀인,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혹시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나요?
음, 흔히들 말하는 인도어파.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끔 운동 정도는 하긴 하지만 역시 몸이 지치는 활동은 사양이거든. 땀 흘리는 것도 싫고. 공부벌레처럼 보이고 싶진 않은데 둘 중에 고르라면 차라리 책이 나아.
이런 학교에까지 와서 가질 목표인가 싶지만 일단은 의사를 목표로 두고 있어.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의사, 좋잖아. 수입 괜찮고, 사회적인 시선도 좋고, 직업윤리도 가질 수 있겠지. 그럼 왜 보건 동아리에 들지 않았냐고? 나중에 질릴 정도로 하게 될 일을 굳이 지금부터 해야할까.
매운 걸 좋아하기도 하고, 잘 먹는 편이야. 스트레스도 그걸로 풀고. 불X볶음면이나 엽X떡볶이 같은 거. 말 꺼냈더니 먹고 싶어지는데…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겠지.
결벽증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역시 더러워지는 건 싫어서, 짙은 색을 선호해. 그런 의미에서 이 학교 교복은 반은 좋고 반은 싫네. 흰색은 뭔가 묻으면 티가 바로 나버리니까. 내가 왜 조끼나 마이를 잘 안 입는지는 대충 설명이 됐으려나. 추위는 잘 안 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피곤해 보인다고? 잘 맞췄네. 실제로도 좀 피곤하긴 한데, 버틸만하니까 버티는 거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컨디션 난조로 망치는 게 싫어서 차라리 그 난조에 익숙해지면 괜찮겠다 싶어서 항상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거든. 지금은 거의 익숙해졌지만 겉으로 표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하지만 걱정은 쓸데없어. 그래도 무리하진 않거든.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누나가 하나 있는데, 내 이상형이야.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상한 생각은 집어치워. 이상형이라고 하면 꼭 연애적인 부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시스콤이라고 할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고, 애초에 친하지도 않아. 반에서 아무나 한 명 잡아도 그보다는 친할 걸. 단순히 사람 대 사람으로 내 우상이야. 동경…하고 있다고 하면 맞겠지.
…이 정도면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