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인,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며, 이젠 어떠신가요?
난 배우는 게 빨라서 뭐든 잘 배우는데, 잘 하진 못해. 그러니까… 딱 평균 정도만 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단하지만, 전문가가 보면 같잖은 정도로만 해. 그러니까 나는… 내가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필요할 리가 없잖아. 누군가 날 대체할 사람이 있을 거야. 그 사람이 훨씬 더 잘 할 거야. 내가 항상 하는 말이지. 그리고 실제로도 그래. 애들은 보통 내 말에 설득당해서 다른 사람을 구하러 가지. 설득당하지 않으면… 내가 자리를 피하면 이해하더라. 좋은 애들이야. 내가 말수가 적어서 피하는 애들도 있긴 하지만… 이해해. 나라도 그럴걸. 그렇잖아, 사실… 그게 맞는 거니까. 말없고 음침하고 맨날 혼자 다니는 애를 누가 좋아하겠어. …흐흐흐. 제법 익숙해.
좋아하는 거… 생각이 안 나는데. 싫어하는 건 있어. 누가 화내는 걸 싫어해.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그 외에는… 나도 나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사실 그렇잖아. 누가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나 관심이 있겠어?
(짧은 목소리가 남았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물론 아직은 어설프지만……
도움이 되고 싶어. 그래서야. 그래서…
[ 도서부 ] 동아리 활동은 어떠셨는지요.
즐거우셨나요. 의미 깊었나요.
무기력하셨나요, 흥미가 생기지 않으셨나요.
조용해서 좋아. 내가 책을 빨리 못 읽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독서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잖아. 편해.
귀인,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제가 더 알아도 괜찮다면 말이죠.
음… 더…? ……뭐부터 해야될지 모르겠어. 날 궁금해한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보이는 것부터 할까… 그래도 되겠지…? 새삼스럽지만, 듣고 있어? 이거 되는 거 맞아? 아… 안 되면… 어떡하지. 어쨌든… 머리는 길긴 한데, 자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 감는 게 귀찮긴 한데… 근데 또 자르면 일이 더 귀찮아져서... 어쩌겠어.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고 귀를 덮어서 귀찮아. 교복은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입어. 운동화같이 편한 게 좋아. 검은색이 때도 안 타고 좋잖아. 한 번 사면 3년은 신어. 요즘엔 발이 더 크지도 않아서 더 오래 신을 것 같아. 다행이야.
요즘엔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읽어. 재미있진 않지만... 그냥 읽어.
(기록은 문제없이 재생되는 듯하지만, 한참 정적이었다.)
……이젠 상관없어.

[ 대입이 간절한 선배 ]
내가 나름대로 그 선배가 나한테 자꾸 말 걸어주는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아마 담임 선생님한테 친구 없는 애를 도와주면 입시에 도움을 주겠다는 확답을 받았을 거야. 그게 아니면 이렇게 적극적일 리가 없잖아. 그래서 나도 아예 사이가 나빠보이진 않도록 협조하고 있어. 사실 기분이 마냥 나쁘지도 않고... 봐, 저기 또... 또 온다? 왜??

[ 도서부 선배 ]
같이 책을 읽어도 불편하지 않아. 나랑 다르게 좋은 사람. 똑같이 말수가 적은데, 나랑 뭐가 다른 건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똑똑한 사람이라 믿음직하고 존경스러워. 지금은 책 읽다 말고 자고 있지만... 뭔가 내가 모르는 중요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 문학 선생님 ]
역시 문학 담당 선생님은 달라. 책 추천을 많이 해주거든. 다 읽기 쉽고 흥미로운 것들이야. 전교생 개개인의 니즈에 맞춰서 추천하려면 얼마나 똑똑해야 되는걸까?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