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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며, 이젠 어떠신가요?


 

어디 보자, 기록 시작된 것 같으니 시작해볼까요.

 

음….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무뚝뚝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잡담 나누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할 말만 하고 끝내니까. 천성이 그랬어요. 이건 가족한테서 자주 들었던 말. 초등학생을 상대로 가르칠 때는 그래도 꽤 노력해서 고쳤는데, 고등학생한테 어린아이 대하듯이 할 수는 없잖아요. 이제 곧 성인이 될 사람인데.

 

​그 이상은 잘 모르겠어요. 객관적인 시선을 날 보는 건 익숙해도, 그걸 타인에게 이렇게 설명하는 건 또 어색해서. 심지어 기록되는 거잖아요.

 

(작은 웃음소리)

 

 평범한 교사 같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딱 그 정도. 면접 보는 것보다 이렇게 떨리는 건 오랜만이에요. 이만 여기서 끝낼게요.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무슨 상황에서도 변함없을 것 같은. 선우 선생이 그래요.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사람이죠. 학생한테 존대를 섞는 교사가 어디 있어요? 난 못 봤어. 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 건지, 순진한 건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보호 프로그램 시작 전에 밖에서 만난 적이 있었어요. 길거리에서 외국인이랑 누가 다투고 있는 거예요. 나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지! 불어인지, 이탈리아어인지… 하여튼. 모르는 사람이 그러면 피하는 게 상정이잖아요.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고. 그런데 (잡음 소리)가 어디서 나타나더니 선뜻 나서더라고.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경찰서에 가는데, 나 참… 놀랐다니까요. 조용조용해서 나설 줄 모를 것 같은 사람이.

 

그 일이 있고 나서 자꾸 눈길이 갔지. 아, 이런 것도 말을 해야 하나?

 

(어색한 웃음이 한 번 흐릅니다. 당황한 것 같은 느낌이네요.)

 

 뭘 해도 잘 할 것 같은데, 왜 교사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보면 볼수록 알기 어렵다니까. 겉으로 태연함을 유지하는 게 익숙해 보여서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타지에 혼자 와서 외로운가 걱정이 되더라고. 꼭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더 위태로우니까. 자, 여기까지.

 

(손뼉을 두 번 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기록이 끝납니다.)

 

_2017.06.30, 상담 교사 ○○○의 기록.

(작은 심호흡을 뒤이어 단호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선생님은 괜찮아. 제일  먼저 이 말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어요. 그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이유는 충분해. 약속했던 것처럼 언제나 여러분의 곁에 함께할 거고, 떠나지도 않을 거예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손잡아줄게요. 우리, 같이 나가도록 해요.

 

(간결하고 진실된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_2020.08.06, 한 교사의 기록.

[ 이름 없는 기록을 재생합니다. ]

여기서 괜찮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긴 침묵으로 기록이 끊겼는지 의문을 들 때쯤 다시 고요한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이 기록은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말렴. 너와 나만의 비밀인 거야. 기계한테 이렇게 부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그래. 괜찮지 않아. 최근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냥, 이런저런.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인생을 되돌아보는 거죠. 나의 삶은 어땠을까 하고….

 

후회 없이 산 것 같았는데, 마냥 그런 건 아니었던 걸 알게 된 거지.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조금… 지칠 뿐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중이라서. …나도 어리광을 피울 상대가 필요했나 봐. 부끄러워지기 전에 끊을게요.

 

(나른한 웃음과 함께 소리가 멎습니다. 기록의 끝이에요, 귀인.) 

 

_모든 것이 끝나고, 기록보관소.

[ 체스 ] 동아리 활동은 어떠셨는지요.

여전히 기억하고 계신가요?

[ 기록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

 


 

귀인,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제가 더 알아도 괜찮다면 말이죠. 

 

“왜 하필 교사를 했냐고 묻는다면… 한국에서 지낼 때 선생님들을 좋아하지 않았거든. 학창시절 때 가장 중요한 사람이 교사인데 말이야. 처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 미래의 아이들이 좋은 교사를 만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그래서 교사가 되기로 한 것 같네. 좋은 선생님까지는 자신이 없어도, 나쁜 선생님은 되지 않을 거야. 그렇게요. 내가 학창시절에 겪었던 그 기분을 다른 사람도 느끼지 않았으면 했어요.”


“말투는 어쩔 수 없어요. 교사라서 학생들한테 초면에 반말을 하는 건 이쪽이 싫어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교사로서 존중 받고 싶으면 먼저 학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몇몇 학생은 오히려 내가 존대하는 게 어색하다길래 적절히 존대랑 평어를 섞어 쓰는 중이랍니다. 이상할까요?

…내 이야기는 이제 그만 기록해도 될 것 같아. 여태까지 기록된 것도 삭제 부탁할게요. 

[ 본인 확인. ]

 

[ 기록을 삭제합니다… ]

 

[ 삭제를 완료했어요, 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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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응원

일로가 2학년일 때 담임을 맡았었다. 프로게이머라는 특이 케이스인 만큼 상담에 진중하게 접근했고, 최대한 일로가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담임이 아닌 지금도 일로가 도움을 청한다면 언제든지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건 물론. 게임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일로가 참가한 대회에는 종종 아이가 모르게 응원을 하러 갈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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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하나에 사탕 하나 ]

외국에 가지 않으면 한국어만 알아도 괜찮아! 라는 마인드의 하늘이 수업에서 종종 잠드는 것을 보고 걱정 돼 개인지도를 제안한 후부터 마리에게서는 달콤한 향이 맴돌기 시작했다. 집중을 못 하는 하늘에게 단어 다섯 개마다 사탕을 주겠다는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탕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는 들고 다니는 사탕을 건네주는 선생님으로 알려지게 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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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다정한 호수 ]

자주 마주치면 정이 들기 마련인데, 그 상대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 보이면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우연히든 아니든, 만나게 되면 괜히 웃음이 나오는 학생. 호수는 마리에게 그런 존재이다. 마음 한 곳에 작은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다정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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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기대

영어 수업 중에 열심히 집중하려 해도 반은 가라앉은 시선을 지우지는 못하는 학생. 그런 청아가 연습실에서 춤 추는 모습을 봤을 때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눈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번 놀란 게 시작이었다. 

그다음은 장기자랑이 가득한 영화를 혼자 보는 모습에 놀란 것이었을까. 다행히 마리는 그런 것에 무덤덤한 편이었고, 보호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종종 청아와 함께 영화를 보곤 한다. 다음에는 또 어떤 매력으로 자신을 놀라게 할지 기대하게 되는 학생.

[ 비가 내리기 전에는

꼭 성적이 좋아야 좋은 학생인 것은 아니다. 우비는 밝은 학생이고, 비록 영어 실력이 부족하긴 해도 수업에 열심인 편이었다. (적어도 마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우비가 무서운 것에 약하다는 걸 알게 된 계기는 매우 단순했는데, 인기척을 안 내고 이름을 불렀다가 아이를 소스라치도록 놀라게 만들었다는 사실. 그 이후로 우비에게 다가갈 때는 꼭 인기척을 낸다. 놀라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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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분한 배려

무덤덤해 보이는 편에 마리는 이런저런 오해를 잘 받는다. 무뚝뚝하다던가, 예의바르지 않다던가. 그 외에도 또 불편한 게 있다면 아플 때도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으슬으슬하게 감기 기운이 있는 날에 질문하러 온 가람이 그것을 눈치 챈 건, 마리에게 꽤 고마운 일로 남았다. 그 후로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듯한 가람의 다정에 혼자 감동한 건 비밀. 그만큼 가람이 질문하러 찾아올 때는 성심성의껏 대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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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상관없는 우정

교육 실습을 마치고 정식 교사가 되어 만난 도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생들 말마따나 말투는 조금, 그렇지만. 친분이 쌓여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음에도 공과 사를 구별하는 만큼 학교에서는 교사 대 교사로 지낸다. 보호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에는 틈 날 때마다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중. 다만 종종 알 수 없는 기시감 비스름한 것을 느끼는데, 도통 왜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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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ar my Niya, ]

선우 마리는 학생이 자신에게 반말하는 건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예의를 중요시하므로, 반말을 위주로 사용하는 별하에게 조용히 유의를 준 건 당연했다. 개인으로서 존중받길 바란다면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고. 그 후로 종종 존댓말을 섞어 쓰는 별하가 귀여운 건 둘째치고, 마리 또한 과한 격식을 원하지는 않아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영어권에서는 존대라는 개념이 없으니 종종 영어로 대화하는 건 어떠냐는. 

그 후로 별하와 조금 더 친밀해진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별하의 영어 성적도 오르고, 여러모로 행복한 결과뿐이다. 장난기가 많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찌 되었든 학생 서별하는 교사 선우 마리의 제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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