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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며, 이젠 어떠신가요?


 

아! 이런거 정말 못하는데… 열심히 해볼게요.

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어딘가 어설프다’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뭐든 끝맺음이 애매하다는 거에요. 다들 그렇게 말하곤 하는데, 사실 제가 봐도 좀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걸 설명하면 좀 슬퍼지는데… 전 정말로, 나름대로 항상 열심히 해요. 뭐든 에너지가 거의 다 떨어질 때까지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 결과는 항상 예상과 다르다는 거죠.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어요?

 

쉽게 예를 하나 들어 볼게요.

다음 시험에서는 기필코 영어 성적을 올려보리라 결심하고서 공부 시간을 몇 시간 늘려가면서 열심히 했지만, 막상 시험을 보면 또 원래 성적과 별로 다르지 않은 거에요.

놀이나 스포츠도 그래요. 열심히 하지만, 그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죠.

 

사실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면 그렇게 슬픈 건 아니지만, 결과가 항상 그렇다보니 아무도 제가 열심히 하는지 모른단 말이에요. 그건 좀 억울한 일 아니겠어요?

 

 

이제는 제가 억울한 것보다는 그로 인해 어떤 피해가 생길까봐, 두렵죠. 이건 징크스에요. 그것도 아주 나쁜…나는 피할 수 있지만 남은 피할 수 없는……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음성이 잠시 끊긴다.)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지… (조금 생각하다가)

그래도 남을 잘 돕는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요. 때때로 의지가 되는 것 같다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나는 그렇지 않아.. (작은 음성이 섞여 들린다.)

친한 친구들은 제가 뭐든 열심히 하는 편이라는걸 알아주기도 하고요.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건 뭐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좀 부담스럽긴 해요. 저는 조금 더 독립적인 활동이 좋아요. 괜히 평가 받는 느낌이 들잖아요. 누구랑 어울리는 것, 뭐 그런거 다 상관 없는데, 평가 받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네요. 그런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그런데 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런거 따질 때가 아니긴 하죠. 나름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단지, 그런 거 있잖아요…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을 때,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라는 말 듣는 거. 그건 무서워요. 원래 누군가에게 박한 평가를 받거나 모호하게 비난을 받는 게 무섭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요. 지금은 그래요. 정말로요. 여기서는 저 하나로 인해서 몇명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지 알수 없다고요. 

 

어… 더 말해야 해요? 맘대로 해도 되나.

음, 수다 떠는건 좋아해요. 취미활동 공유도 좋고? 

아,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걸… 같이 할 만한 상황이 아니긴 하네요…?

그런데 때로는 그런 생각도 해요. 이런 상황일수록 더 많이 수다를 떨고 시끌시끌 소란스러우면, 불안감이 가시는 게 아닐까 하는.

 

그렇잖아요? 무거운 분위기가 길게 계속되면 다 같이 힘드니까. 오히려 떠들썩하면 더 안전한 느낌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음, 나는 그렇게 막 누구를 위로해 주는걸 잘 하지는 않지만, 뭐 그런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라면 같이 들어주거나 수다를 떨 수도 있어요. 어, 그런데...저는 이제 제가 좋아하는게 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이야기는 뭐든 좋아요. 하지만 너무 많은 생각을 해버렸어요.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나랑 친구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이해하려고...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부족해진 것 같아요. 대신 단서들을 가지고 이것저것 예상하거나 추측하는건 얼마든지 할게요.

어… 네. 끝?

이 학생은 원래 자신감이 충만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였을 거에요.

하지만 도저히 평범한 인간으로서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좌절했겠죠.

그 후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잃은 것 아닐까요? 이 음성 기록을 보면 그렇게 보이는데.

그래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생각은 놓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기에 끊임 없이 여러가지 경우의 수와 각 수들에 대한 ‘가능성’을 늘어놓은 거겠죠.

_202X년, 화원고등학교 사건 조사원 A

 

[ 레트로 ] 동아리 활동은 어떠셨는지요.

즐거우셨나요. 의미 깊었나요.

무기력하셨나요, 흥미가 생기지 않으셨나요.

우리 동아리 그렇게 인기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네요.

저는 원래 옛날 게임이나 장난감이라거나, 복고 감성 사진이나 영화 같은거 좋아해서 들어갔어요.

재밌었죠. 그런 물건들을 찾아보거나 모으는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다 함께 협동해서 찾고 모으고 그랬어요.

 


 

귀인,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제가 더 알아도 괜찮다면 말이죠.

되게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 같은데, 나쁜 일은 아니겠죠? 되는만큼 협력해 볼게요.

저는 위로 언니가 한명, 아래로 남동생이 한명 있어요. 언니는 대학생이고 동생은 중학생인데, 뭐 사이가 특별히 좋거나 나쁘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대부분의 형제들이 그러하듯이요. 엄마 아빠도 그래요. 정말 평범한 집. 그러니까, 나도 그냥 평범한 애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아마 그랬을 거에요. 지금 가족들이 기억나지 않아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떠올려 본다.)

 

평범하다는 건 그만큼 뭔가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말도 되는 것 같아요…

이 학교에 온건 제가 가겠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별다른건 없고… 교복이 예뻤어요. (피식 웃었다.)

막상 들어와서 보니까 처음엔 조금 혼란스러웠어요. 과목을 다 선택해서 듣는다던지, 동아리에 꼭 들어야 한다던지… 기숙사에서 사는데 여가 시간이 많으니 그 시간에 뭘 하면 되는지 고민하게 되고. 그래도 참 즐겁게 다녔다고 생각해요. 중학교 동창인 친구들한테는 자랑도 많이 했어요. 무엇보다, 시설이 엄청 좋잖아요! 이건 충분히 자랑거리 아닌가? 그렇게 자랑했던 학교가 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네요. 신뢰가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전 화원고를 꽤 좋아했어요.

 

근데 뭐, 학교는 학교니까 공부하고 시험보고 하는건 똑같네요. 음…

수학은 싫어하고, 과학은 꽤 좋아해요. 그럴 수 있잖아요? 아, 좋아한다고 성적이 좋은 건 아니고.

그래도 이 학교 선생님들 정도면 그럭저럭 재미있게 가르치는 편 아닌가?

중학교 수업은 정말로 재미 없고 딱딱했으니까 말이에요. 이건 사람마다 다를 것 같네요.

 

당연하지만 노는게 더 좋아요. 공부보다는.

아, 아까 동아리 얘기도 했었는데요. 옛날 놀잇감 중에서 꼽자면, 패미콤하고 요요를 좋아해요.

요요로 하는 묘기 알아요? 그거 진짜 신기하죠… 전 못 하지만.  전 애초에 엄청 잘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좀, 기술을 많이 까먹었어요.

또 뭐가 있나? 군것질도 좋아하긴 하는데. 달다구리한 것들 말이에요.

 

저, 제가 너무 평범해서 할 얘기가 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여기까지 말한것도 진짜 열심히 짜냈다고요… 구기 운동은 좀 잘하는 편이라는 거 추가할까요?

그런데 이것도 공을 던져서 맞추거나 골에 넣거나 뭐 그런거만 잘 하지 그 외에는 딱히 잘 하는건 아닌 것 같네요.

 

그런데 이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지...

 

...아! 맞아.

저는 원래 쌍꺼풀이 안 보이는데...친구들이 웃거나 눈을 작게 뜨거나 하면 보인다고 하던데요.

이 정도면 자기소개가 되었나요?

 

 … …

요즘은, 뭐라도 계속 하고 있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서 엄청 움직이고 있어요. 그런 기분 알아요? 멈춰 있으면 죽을 것 같은 기분. 모르면 어쩔 수 없고요… 어, 당연히 피곤해요. 몸이 지쳐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해요… 같은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지 지켜봐야 하고. 왜냐면 저는 비교적 건강하니까…더 뭔가를 잃으면 안 돼니까…

 

포기하는 친구들을 보았어요. 그 친구들과 만약 적으로 마주치게 되면, 이성을 잃은 그 친구들이 과연 우리를 공격하고 싸우고 싶어서 공격하는걸까요? 아닐거에요… 만약, 이성을 잃어가는 친구가 있고, 그 친구가 이성을 잃는걸 두려워하고 우리를 공격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래서 혹시라도 저에게 부탁한다면 저는 기꺼이 ■■■■ (해당 부분의 데이터만 손상되어 있다.) 보다 평화로운 마지막을 도와줄 수 있을 거에요.

뒤에 이어지는 심리상태 녹취본까지 취합하였을 때, 이 즈음의 강은하는 이미 어느 정도의 우울과 불안 증세를 가지고 있었던 걸로 생각할 수 있어요. 대면한게 아니라 기록만 보고 판단하는 거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건 당시 화원고 학생들은 이미 극한의 상황 속에서 생존하고 있었던데다, 환각이나 환청 같은 것들에 시달렸다고도 하니까 가능성은 충분히 있죠. 동일하게 ‘강은하’라는 명의를 밝히며 저장되어 있던 <제목 없음> 기록에서도 일부 그런 면이 보이죠.

_202X년, 화원고등학교 사건 조사원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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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 ]

도래는 1학년 중간고사 이후로 친해진 단짝친구에요. 제가 열심히 하는걸 잘 알아주고 응원해주는 고마운 친구... 라고 표현할수 있을것 같아요. 가끔 맛집을 물어보는데, 항상 기가막히게 맛있더라고요. 저희 동아리에도 자주 놀러오고, 수업 겹치면 같이 앉을 때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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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 ]

이 학교에 와서 생각지도 못하게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어요. 그게 한이에요. 처음엔 머리가 하얘서 못알아봤죠... 그 시절 내 성격이 너무 흑역사 같은데.....? 종종 잠든걸 발견하면 편한 곳으로 옮겨주거나 깨워주고 있어요. 초등학생 땐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걱정되는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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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리 선배 ]

입학하고 레트로 동아리에 처음 찾아갔을 때 패미콤으로 엄청난 컨트롤을 하고 계셨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 동아리 사람도 없으니까 자주 같이 놀았어요. 실력으론 전혀 상대가 안 되지만 게임을 같이 하기도 하고... 게임 영업도 엄청 해요. 올해는 선배가 워낙 바빠서 잘 못 보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서 다시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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